시미즈 카나메:(...미유키의 방 쪽을 흘긋 바라본다. 그는 아직도 같은 방에 머무르고 있을지. 이제는 머리 후보라는 "대단한" 위치에 있으므로, 더 크고 좋은 방으로 옮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이 그의 방문 앞에 멀거니 서 있다 보면,
???: 어, 카나메 아냐?
누군가 뒤에서 당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시미즈 카나메:...? (돌아본다.)
미야시타:야, 오랜만이다! 짜식...5년만에 봤는데 그닥 바뀐 것 같지도 않네.
아....미야시타군요.
당신보다 한 살 많은 손 윗 형제입니다.
그러나 영 나잇값을 못하고 사고만 쳐 대서 일찍부터 경쟁 상대로는 미뤄뒀던... 그런 인간이죠.
어쨌거나 그도 계승식을 위해 모였나 봅니다.
미야시타:근데 이 앞에서 뭐 하고 있어? 얼른 짐 풀잖고.(당신이 바라보고 있던 앞 어깨너머로 넘겨보곤) ....아, 혹시 미유키 보려고?
시미즈 카나메:...(대꾸하기 싫어서 10초정도 그냥 꼬라보기만 하다가...) ...아뇨. 부르시길래 멈춘 것 뿐입니다. (거리감 있는 말투로 답한다.) 이제 방으로 가려는 참입니다.
미야시타:응? (눈 끔뻑거리면서 듣다가) 어우, 야 우리 사이에 웬 존댓말이야? (눈치도 없이 히죽히죽 웃습니다) 너도 민간인 다 됐다 이거지? 에이 그러지 말고 긴장 풀자고, 거...오랜만에 봤는데 남자애들끼리 모여서 다같이 술이나 한잔? (등 툭툭 두드리며 술잔 딱! 마시는 제스처 취했다가 문득 생각난듯 말합니다) 아...근데 미유키는 같이 못 마시겠네.
너네 예전에 꽤나 사이 좋았잖아. 쟤가 저렇게 되어가지고 너도 참 마음이 안좋겠어? (측은한 얼굴로 쳐다봅니다)
시미즈 카나메:아뇨. 음주에는 취미가 없습니다. 바쁘기도 하고요. 술 상대를 찾으시는 거라면 다른 사람이 좋겠습니다. 다른... 남자"애"들 말입니다. (흘긋 미야시타 쪽을 흘겨보았다가, 그대로 눈을 한 번 깜박인다.) 저렇게라뇨? 저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만.
미야시타:(그 소리에 울상으로) 뭐어~? 너랑 미유키 뺴면 이제 아야노밖에 없는데, 그녀석은 마시다 말고 졸리다고 자버릴텐데?? 무슨 재미로 마시냐 그럼.... (입 댓발 나와서 쭝얼쭝얼거리다가) ...그래도 내일 좋은 날인데 좀 늘어지는 것도 좋지 않아? 뭐 저녁에 생각 바뀌면 말하고. (다시 호구같은 웃는얼굴로 돌아옵니다)
응? 아...너는 인제 와서 모르려나?(턱 긁으며) 난 한 이틀 전엔가 와가지고... 사용인들 떠드는거 줏어들었는데.
(미유키 방 문 슬쩍 엄지로 가리키며) 그...쟤가 원래는 되게 나긋나긋하니 얌전했잖아? 웃기도 잘 웃고? 근데 지금은 영 딴판이다더라고. 오밤중에 소리를 지르질 않나, 물건을 집어던지질 않나... 요 몇 달은 밥도 거진 거른댄다. 아주 삐쩍 말랐다던데? 뭐...방 밖으로 나온걸 본 적이 없으니 잘은 모르겠지만.
그는 고심하는듯 턱을 긁으며 이어 말합니다.
미야시타:아무래도 이...(머리 툭툭 건드리며) 이게 좀 안좋아 졌나? 그렇다던데? 아, 그러고보니 사용인들이 네 얘기도 하더라고. 미유키보다 네가 더 머리에 적합하지 않겠느냐 뭐라냐.... 뭐, 그러다가 자기네들 머리가 몸뚱이에 적합하지 않게 되었지만서두. (회심의 농담이었는지 지가 말해놓고 파하핫!!합니다)
어쨌든 병문안이라도 하고 싶으면 가서 보지 그래? 그녀석, 계속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는 모양이니까.
시미즈 카나메:(눈을 굴려 문 너머를 가늠한다. 변했구나. 편지의 내용으로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긴 했다. 그게 아니라도, 5년이나 지나면 무엇이든 변한다. ...하지만 변한 이유까지는 짐작할 수 없다. 각자도생한지 제법 오래 되었고, 제 삶은 과거 따윌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기엔 빈틈없이 바쁘고 메말랐다.) 등 따뜻하고 배부르게 잘 사는줄만 알았더니 의외군요. (적당히 대답하고 나서,)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들리는 소문을 전해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슬슬 짐을 정리해야 할 것 같군요.
(그러고서는, 안 가보냐는 듯 가만히 상대를 바라본다.)
미야시타:그러니까, 나도 그런 줄만 알았는데... 역시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니까? 쩝...(입맛 습 다시다가 이만 가겠다는 듯 말하는 당신 보며) 음? 아, 그래, 내가 너무 오래 세워뒀지? 그럼 짐 정리 잘 하고! 이따가, (술 마시는 제스처 또 하며) 알지?? (하고 헤죽헤죽 웃으며 다른곳으로 갑니다)
시미즈 카나메:안 마십니다. (뒷통수에 대고...)
(미야시타가 사라지면, 아직 풀지 않은 짐부터 2층의 방에 넣는다. 간단히 정리를 마치고 나면, 그제야 편지에 생각이 미쳐... 1층으로 내려와 미유키의 방문을 두드리게 된다.) 계십니까.
미유키의 방 문은 묘하게 차가운 느낌이 듭니다.
그 앞에 서서 노크를 하면,
".........누구?"
안쪽에서부터 가늘고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나옵니다.
시미즈 카나메:... (찰나간 무어라 답할지 주저하다가,) 시미즈입니다. 최근에 서신을 보내셨죠. 기억하십니까? (건조한 어조로 묻는다.)
당신의 대답에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가,
"...열려 있으니까 들어와요."
시미즈 카나메:(대답을 듣고, 문손잡이를 잡았다가 놓았다. 달갑지 않은 자리라고는 하나 옛 지인을 양 손 가벼이 맞이하는 것은 퍽 무례하지 않나. 그렇다고 해서 양 손 무겁게 선물을 사 올 생각은 않았다. 고민하던 차에 갈라진 목소리를 떠올리고는, 주방에서 미지근한 물 한 잔을 준비하여 들어간다. 이 정도 허드렛일은 감내하는 게 맞겠지.)
미유키:(그 말에 잠시간 답 없이 고개 느적하니 돌리며 당신 응시하다) ...그건 내 얘기만은 아닌 것 같은데. 안 그래요, 형?
많이 늦었네...온다면 더 일찍 올 줄 알았는데.(작게 키득이다가) 편지 보낸건, 받았어요?
시미즈 카나메:그게 제가 가진 것 없이 내쫓겨서 5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죠. (방을 눈으로 훑다가, 침대 옆의 협탁에 쟁반과 물잔을 내려둔다.) 도련님이랑은 상황이 다릅니다.
편지는 받았습니다. 무슨 뜻이죠?
미유키:(당신 물끄럼 보고는, 푸스슥 바람빠진 듯한 소리 내며 어깨 들썩이곤) 시간이 야속하긴 한가봐요 형, 도련님이라니...언제부터 그렇게 불렀다고? 너무하네........나 좀 울 것 같아.
(라고 말하지만 눈가는 퀭하니 메말라 있습니다) 무슨 뜻이긴요. 그대로의 뜻이지... 이 꼴을 보고...무슨 감상 없어요? 아, 편질 받고서도 이제서야 오신 매정한 분께는 별 의미도 없나....(입꼬리 비틀며 웃습니다)
시미즈 카나메:부르니 오긴 했습니다만 이제 남남이나 진배없는 사이 아닙니까. 형제 놀음은 졸업해야죠. (당신의 눈가를 한 번 확인한다. 아니나 다를까 말라 있다.) 눈물이 나오면 말씀하십시오. 사용인들은 이 방에 접근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 같으니, 휴지 정도는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며칠 지나면 다시 안 볼 사이에 속사정을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렇게 말씀하시니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제 왼쪽 눈가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다.) 눈은 어떻게 된 겁니까? 팔아먹기라도 했습니까.
미유키:.........그런 부분은 여전한 것도 같은데. 헷갈리게 만드네요.
편지를 한달이나 방치했으면서....내 꼴 보고 비웃기나 하려고 왔나 싶었는데. 예전 생각나게 하네요. 내가 울면 형이 와서 닦아줬잖아, 기억 나요?
(잠시간 감상에 빠진듯 양옆으로 느릿하게 오뚝이처럼 상체 까딱이다 별안간 뚝 멈춰선) ...뭐 다 이제 옛 일인가?
(그리곤 당신 질문에) 아, 이거....(손 들어 붕대 두른 눈가 쓸며) ...저번에 발작을 좀 해서.
칼을 들고 난동을 부렸다고 하더라고, 난 기억도 안 나는데...후후, 진짜 미쳐버린 걸까? 어떻게 생각해요? 나...미친 사람 같나?
시미즈 카나메:(기억이 안 날리는 없지만, ...) 그 땐 도련님이 어렸으니까요. 지금은 사지 멀쩡한 성인이니 혼자 닦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어지는 말에는 제법 오랫동안 침묵을 지킨다. 말을 고르는듯 싶었다.) 기억이 안 나는 건 확실히 문제지만, ... (한 번 서두를 떼자 문장은 막힘없이 이어진다.)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발작을 해도, 미쳐도, 결국 도련님은 머리가 될 겁니다. 손가락질하며 심기를 어지럽히는 이가 있으면 목을 베어버리십시오. 이 저택에 있는 한 다들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죠.
그런데, (방을 한 번 둘러본다.) 원인이라도 있습니까?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답니까? 책임감 같은 겁니까? ...하고, 구태여 묻지는 않았지만, 눈은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미유키:...역시 매정하다니까. (웃음기 뚝 거두며 구부정히 숙인 허리 세우고는, 이어진 당신 말 가만히 듣다가, 다시금 음산하게 키득거립니다.) ....후, 후후...그렇죠. 그렇겠지. 그 작자들이 이렇게 만든 건데... 본인들이 감당하지 못하면 얼마나 꼴이 우스워요? 그거야말로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거린데....
(당신 하는 양 눈동자로 지긋이 좇으며 나자막히 답합니다)원인? 원인이라... 글쎼, 잡히는게 한둘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그는, 잠시 눈을 내리깔고 생각하는 듯 하더니,
낮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립니다.
미유키:...역시, 아버지 때문이려나?
그 치가 날 죽이려 하니까요.
시미즈 카나메:(매정하다니까, 라는 말에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하고 응수하고는... 협탁 위의 잔을 한 손으로 들어 네게 내민다.) 척이라도 지셨습니까?
미유키:(칭찬으로 듣겠다는 말에 후후 작게 웃으며 물컵 받아들곤... 조금씩 홀짝이며 말 잇습니다) 정말 졌으면 이러고 있지도 않았겠죠. 글쎄...언제였더라. 어느날 확신이 들더라구요. 아....아버지가 날 죽이려 하는구나. 하는.
그래서 형에게 편지를 띄운건데... (눈동자만 데록 굴려 당신 응시하며)이렇게 변하신 줄은 볼랐지. (키득입니다) 그래도 형이 먼저 방으로 와 줘서 다행이에요. 내 쪽에서 형을 만나러 갈 핑계는 없었을 테니까.
시미즈 카나메:(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리고 작은 한숨을 뱉는다.) ... 실망시켜드려 죄송하군요. 무얼 기대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주머니에 넣어 둔 편지가 바삭대며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거슬리게 느껴졌다. 신경을 다른 데로 틀고자, 창가로 다가가 찢긴 커튼을 정리한다. 네게 뒷모습을 보였으나 어쨌든 대화는 이어졌다.) 저택을 나갈 생각은 없었습니까?
미유키:...... (물을 반절쯤 마셨을까, 유리컵 입구 이빨로 잘근잘근 깨물면서 듣다가 뜬금없는 문장을 뱉습니다) 오랜만에 왔는데, 저택의 정원은 나가 봤어요?
시미즈 카나메:(커튼을 정리하던 것도 잠시, 어느새인가 네 옆에 다가와 손에서 유리컵을 수거(...)해 간다.) 아뇨. 그런 한가한 기분은 아니라서.
미유키:(한참 잘근거리다가 수거당하고는) 아,
.......(당신 조금 빤............히 보다가) ....그래요?
시미즈 카나메:뭘 봅니까? (컵 탁! 내려둠.)
미유키:(그 말에 대답않고 고개만 홱 돌리고는 창밖 응시하며 중얼거립니다) 형, 기억나죠? 저택 정원에 연못이 있고... 거기에 수련이며 비단잉어들이 잔뜩 있어서 여름쯔음이면 꽤나 운치있었던 거.
...이제 거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이 안 나. 나가면....시선이 진득하게 따라붙고, 가는곳마다 발소리가 들리고... 저택 밖으로는 한 발짝도 못 나가지.
연락책도 빼앗기고, 물건을 들여오려고 하면 두 번 세 번 검사를 맡아야 해. 잠을 자려고 누우면 누군가 천장을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려, 눈을 감아도 귓전에서 계속, 사각사각, 사각사각, 사각사각사각...
그리 말하는 미유키의 목소리는 고저가 없습니다.
텅 빈 새까만 눈을 부릅뜨고 창밖에 고정한채, 그가 말을 이으며...
미유키:... 내가 미친 걸까요? 어쩌면 내가 미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걸지도 모르지.., 나가는 생각? 당연히 해 봤죠. 그래서 형을 부른건데.......
(그 순간 고개 홱 돌리며, 가늘게 핏발 선 눈으로 당신 응시합니다)
형이, 형은 오지 않았어. 내가, 내가 어떤 기분으로... 어떤 시간을 보내며 기다렸는지도 모르지, 형은 몰라, 모른다고. 이 집안이 어떻게 미쳐있는지, 그 치들이 얼마나 끔찍한지....
(계속 앉아있던 침대 윗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른 팔에서 나올 것 같지 않은 매서운 힘으로 당신 팔 붙잡고는) 난, 형이 정말로 필요했는데....왜 안 왔어? 왜 그랬어?형은, 내가....
시미즈 카나메:... (순간 한 발짝 물러났다가... 팔을 붙잡힌 채로 눈썹 끝만 들어올린다. 제 팔을 잡은 손을 반대쪽 손으로 붙들고는,) 진정하시죠.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예, 전 모릅니다. 이 집안의, 아라시구미의 일에 대해서는 이제 별로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한때는 조직에 이바지하는 것이... 나아가 머리가 되는 것이 목표였던 적도 있었습니다만... 다 옛 일이죠. 도련님의 말대로.
평범한 삶,이 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직과는 조금도 얽혀 있지 않는 삶 말입니다. ...이곳에 오길 꺼려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도련님과 정 반대의 길을 걷기로 했으니까요. ...상태가 이 정도인지도 몰랐고. (알았어도 미뤄 뒀을까. 지금 와서는 모르는 일이다.)
미유키:(붙들리건 말건, 그러쥔 손에 더욱 힘 주며 쉰 목소리로 또박또박 힘주어 말합니다) ....모른채로, 그렇게 눈 돌리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아니야...그럴 수없어. 이 집에서 부대껴 산 그 지난 시간들을....마주할 수밖에 없다고. 싫더라도 그렇게 될거야.때가, 때가 왔어 형.............
그가 가히 실성한 사람처럼 애꿎은 당신을 붙들고 열변을 토하다가,
갑작스레 창문쪽을 향해 고갤 홱 돌립니다.
그 시선은 곧고…아니, 지나치게 곧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두려움에 찬 눈으로 응시하다....
미유키는 창문 쪽으로 달려가더니 거칠게 커튼을 칩니다.
검은색 암막 커튼이 빛을 덮고, 방은 곧 어둠에 젖어듭니다.
...그는 커튼을 붙을고 고갤 푹 숙인채로 거친 숨을 몰아쉴 따름입니다.
시미즈 카나메:... (빛 한 점 새지 않는 커튼 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둠에 묻힌 인영이 일렁이는 곳에 시선을 못박는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만.
미유키:(커튼 꽉 붙든 채로 고개만 당신 향해 돌려, 식은땀 흘리는 얼굴로횡설수설거립니다) ....저, 저 창문 너머에, 유령이. 여자애 유령이 있어. 들여다보내 달라고 하고 있잖아요. 안보여요? 잠옷바람에, 갈색머리를 온통 산발하곤…!
지금, 들여보내 달라고 소리치고있잖아....... 정말, 안보여요?
시미즈 카나메:(묘하게 구체적이군.) 네. 안 보입니다. 여차하면 다시 확인해드릴수도 있습니다만.
들여보내달라는 말 이외에는 아무 말도 안 합니까?
미유키:(확인해줄수있다는 말에 그저 커튼 붙들고 필사적으로 고개 내젓습니다.) (붙든 손등에 핏줄이 서도록 꽉, 그렇게 몇분을 서있다가....) .....나, 이러는거 꼴사납죠? 하, 하하...... 이런 식으로 다시 보고 싶지 않았어. 정말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이제 때가 와버렸으니까, 더이상 물러날 데가 없었다구요...........
(그리곤 겨우 허리 펴고 서서 곧 울것같은 얼굴로 말합니다) ...나, 아마 내일 계승식이 끝나면 아버지 손에 죽을 거에요. 왜 죽이려는지, 그 이유까지는 모르겠지만...내일이 끝이라는것. 그것 하나만은 단언할 수 있어.....
시미즈 카나메:... (침묵을 지킨 채 한참을 바라보다가,)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거의 없습니다. 그건 한 달 전에 왔더라도 마찬가지였을겁니다.
(그대로 느릿하게 눈을 한 번 깜박인다.) ...절 너무 믿지는 마십시오. (도와주겠다거나, 노력한다거나... 그런 말은 인사치레로라도 꺼내지 않고 말을 마무리한다. 죽는다고 하면, 손 놓고 보고 있을 생각은 없지만... 기대를 심어줄 만큼 대단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2022.04.02. 02:23 끊음
2022.04.02. 21:00 이어감
당신의 말에 그가 순간 무너지는 듯한 표정을 했다가,
미유키:형, 내가, 내가 정말 뭔갈 해주길 바라고 형을 부른 것 같아? 아냐, 나는....
상석에 앉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수건으로 입을 닦은 아버지는...미유키를 한심하단 듯 한번 쳐다보곤.
타카나시 쇼:...다들 먹었으면 일어나라. 한심한 꼴들이군....쯧.
그 말을 남기곤 일어나 식당을 나갑니다.
....식당의 분위기는 싸늘합니다.
몇분이나 그러고 있었을까,
미유키는 당신 어깨를 잡은 그대로 서서 입술을 짓씹다, 뒤도 안 돌아보고 식당을 박차고 나갑니다.
마치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모양새입니다.
시미즈 카나메:... (한숨...) 저도 나가보겠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뒤따라 나간다.)
식당을 나서는 당신 뒤로 속닥거리는 형제자매들의 목소리가 따라붙습니다.
...참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집구석이네요.
방으로 돌아가면 미유키는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침대 위에 웅크려진 이불 더미가 보일 따름이네요.
바깥의 무언가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모양새입니다.
시미즈 카나메:... 식사를 거르시더군요. (적당히 말을 붙인다.)
미유키:...............(당신 목소리가 들리자 순간 이불더미가 움찔 했다가, 천천히 고개 내밉니다) ....식사는 아까 형이 준 걸로 됐어요.
남들이 만든건 하나도 먹고 싶지 않아....
시미즈 카나메:...아까 그것도 제가 만든 거라고 말한 적 없습니다만. (맞긴 한데.)
미유키:(고개 내민 채로도 당신 시선 피하고 있다가 그 말 듣자마자 고개 홱 들고는).....................................................................................
.........진짜...?
시미즈 카나메:... ... ... ... (뺨 꿈틀...)
진정하십시오. 제가 만든 것 맞습니다.
(낯간지러워서 굳이 말 안 했을 뿐이지...)
미유키:(조금 배신감에 찬 얼굴?되려고 하다가....) (뒤이은 말 듣고는 못마땅한듯 눈 반쯤 내리깔고는) ..........나 화낼 뻔 했어요. 짖궂어.... (퉁명스레 중얼거립니다)
시미즈 카나메:그렇군요. 제게도 꽃병을 던지실겁니까? (퍽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는,) 음식에 적응하셔야 할 겁니다. 만드는 사람을 전부 갈아치워서라도. 제가 계속 만들어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고 입에 거미줄을 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미유키:................. (꽃병 던질거냔 말에 그냥 살짝 쨰려보듯 쳐다보곤) 내일이 지나고도, 내가 살아있으면 그래야겠어요.
이곳엔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어.....(지친듯 중얼거립니다)
...형, 내가 남아 달라고 하면 남아 줄거에요?
시미즈 카나메:(침묵 끝에 입을 뗀다.) ... 살 겁니다. 도련님에겐 역할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맡기기 위해서라도... 삶은 이어질겁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건조한 공기 속에서도, 어떻게든 숨은 트일 테죠. (그것은 어울리지 않게 완곡한, 그러나 확실한 거절.)
미유키:(당신의 답에 쓰게 웃으면서).....이런 식으로 이어지는게 삶이라면, 그냥 끝나버리는게 나을지도 모르죠. 아마 내일이면 어떤 식이로든 결론이 날 거에요.......... ......
그리 말하는 미유키의 눈은 텅 비어있는 듯 합니다.
...도통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 건지.
탐탁잖게 쳐다본다면, 그는 그 시선을 느꼈는지 고갤 기울여 작게 웃으며 말합니다.
미유키:...아, 걱정 마요. 형한테 누는 안 끼칠 거니까.
시미즈 카나메:...
미유키:그래....가시겠다는데. 어떻게 잡겠어요. 그냥, 오늘 밤만 같이 있어주면 돼. 그정도로도 괜찮으니까.....
아, 그러고보니 아까 오는길에 사용인더러 침구를 가져오라고 시켰는데.
지금쯤 문 밖에 놔뒀을 지도 모르겠네요. 한번 살펴볼래요?
시미즈 카나메:...그렇게 하죠. (구태여 말을 얹지 않고, 일어나 문 밖을 확인한다.)
문 밖을 살피면, 과연 이불과 베개가 문간에 기대져 있습니다.
뽀얀게 세탁은 아주 잘 되어 있네요.
시미즈 카나메:(침구를 들어 방 안으로 옮기며,) 침대 옆에 두겠습니다.
미유키:응. 형 좋을 대로 해요.
침대 옆에 침구룰 두고 나면...
방 안에는 다시금 깊은 정적이 내려앉습니다.
딱히 대화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쩐지 숨이 막혀온다고 생각이 들려던 찰나...
꾸물거리며 이불을 어깨에 두르고 앉은 미유키가 다시금 말문을 엽니다.
미유키:...그러고보니 우리, 그때 머리가 결정되고 난 후로 딱히 얘기해 본 적 없죠.
난 그때 할 말이 아주 많았는데....일이 너무 빨리들 진행되어서.
정신차리고 보니 모두 뿔뿔히 흩어져 있더라구요. 하하... 그땐 얼마나 얼떨떨했는지.
미유키:정신차리고 보니 모두 뿔뿔히 흩어져 있더라구요. 하하... 그땐 얼마나 얼떨떨했는지.
...옛날 얘기 좀 할까요? 지금 와선 좀 늦었을지라도.
시미즈 카나메:...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만, 알겠습니다.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서, 가라앉은 눈으로 네 쪽을 응시한다.)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으신겁니까? 질문이라도 있습니까?
미유키:(고개 슬쩍 기울여 당신과 눈 맞추며) ...질문이랄지. 넋두리랄까요.
하지만 나만 말하는건 좀 불공평한 것 같으니까....형 이야기도 듣고싶어서. (후후...하고 작게 웃습니다)
(그리곤 잠깐 침묵하다가) 사실 나, 머리가 될 생각같은건 하나도 없었어요. 이런 말 하면 좀 얄밉게 느껴지려나?
난 정말 그땐 형이 머리가 될 줄 알았거든....
시미즈 카나메:불공평이라고 할 게 있습니까? 제 얘기라고 해 봐야 별 것 없습니다만.
(이어지는 말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크게 놀라지 않고 눈을 씀벅인다.) 그거야 모든 아이들이 알았을 겁니다. 머리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와는 별개로, 도련님에게는 열망이랄 것이 크게...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어쩌면 그것이 연기였을지도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만.
2022.04.03 01:02 끊음
2022.04.08.22:30 이어감
미유키:(당신 말에 바람빠진 풍선처럼 푸스스 웃고는) 연기라, 과한 평이네요. 그 시절 전 그저 모두에게 벽을 치는걸로밖에 스스로를 지킬 줄 모르는 꼬맹이었는데도.
그래서 그런가? 형이 거침없이 말을 걸어 줬을땐 좀 당황스러웠달까요....후후, 후계자 경쟁에 내던져진 판에, 그렇게 친근하게 구는 사람도 몇 없을거에요. (그리곤 지금의 당신을 지긋이 봅니다.)
시미즈 카나메:그 땐 저도 꼬맹이였으니까요. 경쟁이나 견제보다는... 친구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대장 놀이에 어울려 줄 사람을 원했던 거겠죠. 멍청하긴 했지만, 마냥 꽃밭은 아니었거든요.
(제게 닿는 시선을 자연스럽게 흘려내고는,) 머리가 될 생각이 없었다면, 왜 이 저택에 남기로 하신 겁니까? ...아버지 때문인가요?
미유키:멍청하다기엔 형보다 밑에 있던 형제자매들이 안타까워 지지 않나요? 쿡쿡...(키득거리다가) ....그렇다기보단,(고개 살짝 기울이며) 어줍잖은 책임감. ...같은 거죠.
항의도 해 봤지만, 아버지는 완고했고.... 선정 기준조차 알려 주지 않았으니까. 누군가가 머리를 해야 한다면, 그리고.... 그게 형이 아니라면. 내가 할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뿐.
...그랬는데 지금은 이 꼴이네요. 큭큭... 참.... 객기도 적당히 부렸어야 했나?
시미즈 카나메:뭐... 그때도 머리는 도련님이 더 좋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내 제갈공명으로 삼을까. 같은 생각을... (말하다 말고 말끝을 흐린다. 지나치게 어렸던 과거의 이야기까지 꺼내둔 것 같아서. 표정 없이 화제를 돌렸다.)
...그 때에 도련님이 책임감을 가져 주었기 때문에, 아라시구미는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겁니다. 딱히 아라시구미가 잘 되길 바라지는 않았습니다만... 자책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유키:제갈공명이라, (큭큭 웃으면서)형은 초록빛이니까, 유비랑 딱 들어맞네요. 나쁘지 않은데, 후후후...
(그리고 이은 말에, 당신 지긋이 올려다보며).....................자책? 형은 이게, 자책으로 보여요?
시미즈 카나메:... 굳이 짚고 넘어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숨을 쉬며 이마를 한 번 짚었다가, 오랜 침묵에 고개를 들고 네 쪽을 응시한다.)
후회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저택의 분위기와 압박, 책임감에 떠밀려 "머리"라는 자리를 받아들인 것을.
압박? 그런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어. 이 싸늘한 저택엔 내 마음을 둘 곳 따위 하나도 없으니, 어떤 것도 짐이 될 수 조차 없었다구요. 난 그저..........
거기까지 운을 뗀 그가, 당신을 봅니다.
깊고 검은 눈 위를 어지러이 맴돌던 붉은 안광이 당신을 향해 똑바로 고정됩니다.
미유키:형, 지금까지 계속 말했잖아요. 왜 하나도 들어주지 않는 거야?
시미즈 카나메:(의식적으로 네 시선을 회피한다. 유난 떨기는 싫었으므로, 구태여 대화의 흐름을 끊지는 않았다.) ...계속 듣고 있었습니다만. 이것으로는 부족합니까?
미유키:(이불 쥔 손을 틀어쥐며, 눈매를 일그러트립니다) 그런 뜻이 아닌 거 알잖아. 왜. 왜 피하는 거에요?
이 집에서 버텨낸 것도, 이 자리를 감내하기로 결심한 것도, 이 꼴이 되고서도 멍청하리만치 죽을 날을 기다리는것도...알잖아. 나는 형만 있으면 됐어. 왜 그걸...그런식으로 말해?
크게 뜨인 그의 흰자에 핏발이 비치는게 이 어둠 속에서도 선명합니다.
단어 하나 하나 쥐어짜내듯 말하는 그는 얼핏 필사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시미즈 카나메:... (잠시간 말이 없었다. 옛 일이다, 길이 다르다, 그런 종류의 선을 긋는 말은 수십마디도 더 알고 있는데, 어쩐지 때가 아닌 것 같았다. 제게는 아직 납득하기 힘든 절박함이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 납득하기 위한 질문을 입에 올렸다.) 도련님은, ...
...왜 제가 필요하십니까?
저는 더이상 도련님의 상냥한 형도, 이 집의 식구도 아니고, 당신을 구원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저에게 뭘 기대하십니까? ...그건 제게 가능한 일입니까?
미유키:.........필요한 것에, 이유가 꼭 붙어야 해, 형?
기대하는것 따위 없다고 하면 믿어주긴 할 거야?
형의 이름처럼, 그냥 형 자체가 내게 중요할 뿐이라고 하면, 왜, 또 한 발 물러서고 말을 돌리고... 그렇게...
그가 잠시간 참담한 표정으로 입을 달싹이다, 다시금 문장을 이어나갑니다.
미유키:...그렇게 외면하고 살 순 없어 형. 당장 형이 외면하더라도...결국은 마주봐야만 할 거에요. 과거에 매달려 있는 미련한 놈이라고 해도 좋아, 나는 그것 덕분에 여기까지 살아남아 있을 수 있었어...
거기까지 말하곤, 그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씁니다.
미유키:....늦었으니, 이만 자요. 미친 사람 상대하는 것도 피곤하겠지.
.....내일은 길 테니까.
시미즈 카나메:(이불을 뒤집어쓴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혼잣말처럼... 아니, 거진 혼잣말이나 다름없는 작은 소리로 말을 이어나간다. 당신이 들었으면 하는 것 같기도, 그대로 잠들어 있었으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도련님이 제게 투영하는 것은 과거의 저이니, 필요한 것도 과거의 저일진대... 제가 곁을 지켜도 실망하기만 할 겁니다. 지금처럼.
...그래도 과거의 제가 당신에게 도움이 된 것은 다행입니다.
내일은 길겠죠. (그리고 내일이 지나면, 과거는 영원히 과거로 남게 되겠지. ...해묵은 것의 종결이 도래한다. 그러니까, 눈 앞의 이를 동생으로 칭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마지막이라면...) ...편히 주무십시오, 미유키. (짧은 인사정도는 남길 수 있을 터였다.)
...그는 답이 없습니다.
자는것인지, 아니면 듣고서도 무시하는 것인지...
...어쨌든 당신도 이만, 잠을 자도록 할까요.
그의 말대로 내일은 긴 날이 될 테니까요.
시미즈 카나메:...(그 와중에 이불의 각을 정확하게 맞추고, 정자세로 누워서 잔다.)
당신들이 말을 주고받는 동안 바람은 불고, 해는 넘어간 지 오래입니다.
빛이 줄어들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앙상한 나뭇가지는…
미유키의 얘기를 들어서인지, 어쩐지 더 을씨년스럽게 보여요.
아버지가 자식을 죽인다니, 정말일까요?
아무리 친아버지가 아니라고 해도, 그동안 키운 정 정도는 있을 텐데요.
아까의 대화에서도, 못마땅해 하는 구석은 있었지만...그런 낌새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전부 미유키의 망상은 아닐까요….
어찌되었건 달은 뜨고, 밤은 깊어갑니다.
평소 한번 자리에 누우면 깨지않고 자는 당신임에도...
오늘은 어쩐지 어둠 속에서 들리는 소리 하나하나들이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자는 줄 알았던 미유키는 아까부터 이불 속에서 무언가 속닥이고 있습니다.
마치, 당신을 향해 말을 거는것처럼...
아니, 아니지.
저건, 당신에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는 듣는 것이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듯 중얼거립니다.
미유키:....사라져! 널 들여보내 주진 않을 거야.
꿈에서 칼을 봤어, 매번. 그 칼을 쥐고 싶어지는 게 왜인지 알아…그 칼이 결국 내 목을 베겠지, 아닌가?
시미즈 카나메:... ... (식어가는 붉은 덩어리를 한 번, 검을 쥔 손을 한 번 바라보고는... 짓씹듯이 욕설을 뱉으며 검을 내던진다. 습관처럼 안경을 벗고 마른 세수를 하면, 척척하게 젖은 붉은 손이 낯짝을 물들인다.) ... 아뇨.
제가 실수했습니다. 제압만 하려고 했는데.
미유키:(아버지의 시체를 보다, 붉게 젖어들어가는 카나메의 얼굴에 시선 옮기곤) ...글쎄, 그걸 들고 있는 이상, 멀쩡히 제압만 하는 것도 힘든 일이겠죠.
(그리고 푹 젖어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며 시야 가리는 머리카락 조금 넘기고는) 아까까지 머릿속에서 계속 속닥이던 소리가, 지금은 아주 개운해....아마, 형이 그 칼을 쥐었기 때문이겠지. 하,하하. 참....이렇게 쉽게 떨어져 나갈 거였으면, 지금껏 괴롭혀 온 건 뭐였는지...(조금 허탈하게 웃다가)
그가 조소하는 듯 한 웃음을 곧내 가라앉히고 아까보단 맑아진 듯한 눈으로 당신을 똑바로 쳐다봅니다.
미유키:형. 그걸 쥔 이상 원래대로 돌아갈 순 없어요. 내가 말했죠. 외면할 수 없을거라고. 결국은 마주봐야만 할 거라고...
그래도, 그래도 가고싶으면....내가 마지막으로 선택권을 줄게.
이대로....(저택 너머 울창한 소나무숲을 가리키며) 저 밖으로 도망가던지. 그 칼의 무게를 오롯이 떠안을지.
선택해요.
시미즈 카나메:... ... 처음부터 거들떠도 보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런 것. (한숨을 푹 쉰다. 폭풍우 치는 날씨가 제 머릿속까지 뒤흔드는 것 같다.) ... 제가,
...저택을 떠난다고 하면, ... 알려주십시오, 미유키. 지금의 당신은 정상인 것 같고, 어릴 때부터 저보단 머리가 좋았으니까. (표정 없는 얼굴로, 입으로만 하하. 웃는 소리를 내면서.)
... 이 검으로부터, 과거로부터, ...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는 할까요?
(벗었던 안경을 다시 쓴다. 빗방울이 사정없이 들이친 안경알은 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리다. 기실, 폭풍우 치는 날씨가 아니었더라도 눈 앞이 먹먹한 것은 마찬가지였을것이다.) ...저택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내쳐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내 손으로 끊어냈다고 생각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범한 삶이 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어떤 평범한 사람이, 아버지를 죽입니까? ...
흐린 눈 앞으로 검은 인영이 다가옵니다.
그리고....가만히 당신의 손을 잡습니다.
미유키:....형, 형은 원래부터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내겐 항상 특별한 사람이었으니까. 이제 와서 새삼 그건 달라질 것도 없지.
도망쳐도 괜찮아요. 하지만...
적어도, 형이 이걸 끊어내지 않고 떠안는다면...내가 옆에 있을게.
형이 나에게 중요(要)한 것처럼, 형의 삶을, 형의 행복(幸)을 위해서라면...내(倖)가 옆에서 도와줄 테니까....
가지 마요. 응?
시미즈 카나메:... (어쩌면, 함께 저택을 나갈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나가서, 각자의 삶을 살면서, 거리에서 마주치면 남인듯 스쳐 지나가는. ...어쩌면 가벼운 눈인사 정도는 주고받을 수도 있는 일상을.)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 묻겠습니다.
당신을 지독한 비일상 속에 남겨두고 갈 생각이었던, 제가 할 말은 아닙니다만...
이런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인, 비일상 속에서 ... 정말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검은 인영이, 안경에 내리는 빗줄기를 따라 일렁인다. 잿빛이 흘러내린다. 그러다 그 사이로, 어린 네가 비쳤다. 그 때에는 어땠던가. 행복했던가...)
(적어도 그땐 늘 웃고 있었으니 ... ... 아마도.) ...듣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대답.
(바닥에 놓인 검을 주워든다. 애먼 사람이 주우면 곤란하므로.) 빗줄기가 찹니다. 들어갈까요, 미유키. 비록 창문은 다 깨졌지만.
앞은 여즉 뿌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왜일까요. 마주한 그가 웃고있을거란 확신이 드는 건.
당신과 미유키는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돌아갑니다.
문을 닫고, 창문을 걸어 잠궈요.
...아, 다 깨져버렸던가요? 뭐 어떻습니까.
저 밖에선 비와 바람이 세차게 몸을 때리고, 듣도 보도 못했던 생물들이 길게 울부짖는 소리가 먼 숲에서부터 들려오지만ㅡ